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다만 니코바르 제도 (문단 편집) === 안다만 제도 === 북부에 위치한 안다만 제도 주민의 거의 대부분은 인도 본토 이주민들의 후손이다. 원주민들은 안다만 제도 인구의 0.1% 정도인 천연기념물 수준. 안다만인, 엉게(Önge)인, 자라와인 같은 이곳 원주민들은 북인도의 [[인도아리아인]], 남인도의 [[드라비다인]] 주민들과는 전혀 다르며 독특한 언어를 사용한다. [[파일:안다만 네그리토.jpg]] 안다만 네그리토 부부, 1876년 이들의 키는 작고 피부색은 검으며 많은 부족들이 원시적으로 살고 있다. 이들은 [[네그리토]]에 속하며, 피부는 검지만 인종 분류상 [[흑인]]은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통념 상으로는 이들도 흑인이지만, 형질인류학적인 분류 상으로는 일반적으로 흑인으로 불리는 [[아프리카]]계 흑인[* 사실은 [[아프리카]]의 [[흑인]]들도 형질인류학적 측면에선 전부 [[니그로이드]]인건 아니다. [[서아프리카]] 및 [[중앙아프리카]], [[동아프리카]]의 [[반투어군|반투]]계 민족과 [[나일사하라어족]]계 민족들이 진짜배기 니그로이드고, [[남아프리카]]의 [[코이산족]]은 독자적인 인종을 이루며, 아프리카 곳곳에 흩어져 사는 [[피그미]]는 [[오스트랄로이드]]의 조상으로 추정되고 있다.]들인 [[니그로이드]]와는 전혀 다른 부류다. [[네그리토]]는 형질인류학적으로는 [[뉴기니 섬]]의 원주민이나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과 함께 [[오스트랄로이드]]로 분류된다. 네그리토는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최초로 벗어나 중동과 인도 방면으로 이동했을 때 태평양 주변에 정착하며 탄생한 오래된 분파의 후손이다. 이 원주민들은 [[1850년대]] 들어서야 외부인과 접촉하였는데, 당시의 인구는 7천명 정도였다. 그 중 안다만인이 10개 부족, 5천여 명이었다. 하지만 [[인도 제국|영국령]] 시절부터 인도 본토에서 죄수들과 자발적 노무자들, 그리고 이후에는 농부들이 이주를 시작했으며, 현재는 원주민이 아니라 인도 본토인과 후손들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와 비례하여 원주민들은 땅을 뺏기고, 외부인들로부터 옮은 전염병으로 인구가 급감했다. 현재 원주민들은 400~450명 정도로 극히 소수인터라 인도 정부의 보호를 받는다. 안다만인은 52명으로 줄었고, 그나마도 대부분이 자기들의 언어를 잃고 [[벵갈어]]를 사용한다. 장길인은 20세기 초반에 이미 멸족한 지 오래이며, 옹게인은 100명도 안된다. 20세기 후반에서야 외부인과 접촉을 시작한 자라와인[* 2010년대 초반에 이들에 대한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20&aid=0002305366|인간 사파리 관광]]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관광객들은 이들을 동물처럼 부리며 춤을 추도록 요구하거나 바나나를 던져주는 등의 악행을 저질렀다. 인도 정부의 관리들은 뇌물을 주면 이런 행위를 묵인한다고 한다.]과, 지금도 격리되어 있는 [[센티널족]] 정도가 명맥을 잇고 있다. 한편 이 원주민들은 외부인들에 대한 적대감이 있는데, 2차대전 때 일본군의 점령 시 [[찬드라 보스]]가 이끄는 [[자유 인도 임시정부]]의 국기가 맨 처음 내걸린 후 원주민들이 학살당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유 인도 임시정부]]. 본부가 이 섬 포트블레어에 있었다.] * 안다만족: 본래 명칭은 아카족으로(애초에 안다만이라는 명칭은 하누만에서 왔다는 말이 있다) 18세기 말에는 10부족, 200~6600명으로 추산되어 제도에서 가장 많았으나, 영국인들이 1860년대 본격적으로 식민지를 시작해 석기시대 문명인 안다만족이 본격적으로 산업 사회와 대면했을 때는 추산 인구 3500명이었다. 이후 전염병을 비롯한 여러 요인들 때문에 1901년에는 불과 625명만이 살아남았고, 1930년경에는 100명 남짓 남았다. 인도가 독립한 1949년에, 남은 안다만족은 전염병 등 위협으로부터 보호를 위해 안다만 섬 본토에서 완전히 밀려나 1.14㎢에 불과한 블러프 섬으로 이주되었다. 하지만 1951년에는 25명, 1961년에는 19명으로 역대 최저점을 찍었다. 1969년에 다시 스트레이트 섬(5㎢)[* 안다만 제도 동쪽에 있다.]으로 다시 이주되었고, 그 후 2001년에는 그나마 43명으로 회복되었다. 2010년에는 52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이미 20세기 후반 들어서는 인도 본토인이나 버마인과의 혼혈이 늘어난 상태로, 부족마다 있던 언어들도 지금은 2010년대를 기점으로 모두 사멸한 상태이나, 2020년 기준으로 유일하게 [[https://en.wikipedia.org/wiki/Aka-Jeru_language|아카제루어]]만이 L2 화자가 3명 있다.[[https://www.downtoearth.org.in/blog/environment/-sumbiotude-a-new-word-in-the-tiny-but-growing-vocabulary-for-our-emotional-connection-to-the-environment-70709|#]] 2020년 8월 27일, 59명의 부족민 중 10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20/aug/27/tribespeople-of-andaman-islands-in-bay-of-bengal-test-positive-for-covid-19|#]] * 옹게족: 남쪽의 리틀 안다만 섬(가우볼람베 섬이라고도 한다)의 오지에 거주하는 민족으로[* 이 섬도 주류 인구는 인도 본토인들이 차지했다.], 1901년 672명이었으나 1951년 150명, 2001년 95명으로 최저점을 찍고 2011년 101명을 기록, 안다만족만큼은 아니나 역시 세가 줄어들었다. 그나마 2006년 기준으로 대부분의 옹게인이 옹게어를 사용하고 있으나, 부부의 40%가 불임이고 28세 이전에 출산하는 여성이 거의 없는 등 인구학적으로 위기를 겪고 있다. * 자라와족: 2011년 기준 380명을 기록, 현재 그나마 많은 숫자가 남은 원주민으로, 현재는 안다만 섬 본토의 중서부 오지에 살고 있다. 외부인에게 적대적으로 1970년대 인도정부가 내륙 개척도로를 내면서 외부인과의 갈등이 더 심해졌다. 가까운 과거까지만 해도 외부와의 교류가 거의 없는 고립된 민족이었고, 본토를 개척하기 위해 섬에 들어온 인도인들을 여럿 살해할 정도로 호전적이었으나, 1996년에 '엔메이'라는 이름의 자라와족 소년이 다리를 다치고 길을 잃은 것을 인도인들이 발견하여 인도 측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원래 살던 마을로 돌아간 것을 시작으로 자라와족 내에서 외부인들에 대한 적대감이 줄어들기 시작했으며 1997년, 부족 내에서 [[홍역]]이 돌며 사람들이 치료를 받기 위해 조금씩 개방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로도 부족에서 홍역이 자주 유행했는데 그때마다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며 21세기에 들어서야 외부와의 본격적인 교류가 시작되었다. 그 와중에 인간 사파리 사건이 터지기도 했다. 자라와어는 2001년 기준으로 자라와족의 70%가 사용한다. * --장길족--: 루틀랜드 섬에 거주하던 부족으로 현재는 멸족되었다. 19세기 중반경 섬을 방문한 영국인들의 일지에서 처음으로 접촉했다고 기록되었으며, 1907년경 영국 탐험가들이 2차 방문을 하였을 때는 부족원의 수가 급감해 있었고 1920년대에 진행된 3차 방문 때는 섬의 어디에서도 사람이 거주한 흔적이 발견되지 않아 결국 1931년 최종적으로 멸족했다고 보고되었다. 인구 수가 크게 감소한 다른 안다만 부족들처럼 외부인들이 퍼뜨린 질병으로 인해 소멸한 것으로 추정된다. 원주민들이 전멸한 루틀랜드 섬에는 현재 인도계 주민 340여명만이 거주 중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